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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캐던 정선 땅속서 ‘우주의 비밀’을 캐고 있다

  • 김광희 기자
  • 입력 2026.08.1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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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 1000m 예미랩서 암흑물질·중성미자 연구

별의 원소 밝힐 가속기·2t급 검출기 구축 추진

광물 캐던 정선 땅속서 이젠 우주의 비밀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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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망원경을 들고 높은 산에 오른다

그러나 정선에서는 정반대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찾기 위해 산 위가 아니라 땅속으로 향한다

예미산 지표면에서 약 1,000m 아래, 햇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암반 속으로 내려간다.

정선군 신동읍 예미산 지하의 예미랩(Yemilab)’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처럼 지상에서는 좀처럼 붙잡기 어려운 입자를 연구하는 국가 지하연구시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건립해 202210월 문을 열었다.

현재 예미랩에서는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히는 아모레-(AMoRE-II)’와 암흑물질을 찾는 코사인(COSINE)’ 실험이 추진되고 있다. 별 내부의 핵반응을 연구할 지하가속기 연아케이(YUNA@K)’와 약 2t 규모의 중성미자 검출기 뉴아이(νEYE)’ 구축도 구상되고 있다.

두 계획이 현실화하면 예미랩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넘어 별의 진화와 원소의 기원까지 탐구하는 국제적인 기초과학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다만 연아케이는 기획 단계이고 뉴아이도 정부 연구개발사업으로 제안된 상태다. 아직 설치가 확정된 장비는 아니다.

 

양양의 한계를 넘어 예미산으로

예미랩의 출발점은 양양 양수발전소 지하 약 700m에 마련된 양양지하실험실이었다. 국내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연구의 문을 열었지만 실험공간이 약 200에 불과했다. 발전시설 안에 있어 대형 장비를 들이거나 공간을 넓히기도 어려웠다.

기초과학연구원은 2013년부터 더 깊고 넓은 연구시설을 지을 곳을 찾아 나섰다. 마지막 후보는 삼척 두타산과 정선 예미산이었다.

두타산은 더 깊이 내려갈 수 있었지만 새로운 진입터널을 뚫어야 했다. 공사비가 많이 들고 환경 관련 인허가도 복잡했다.

반면 예미산에는 한덕철광의 광산시설과 길이 627m의 수직갱도가 있었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 공사비와 산림 훼손을 줄일 수 있었다. 두꺼운 석회암층도 우주에서 쏟아지는 입자를 막는 데 유리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지질과 공사비, 접근성, 차단 능력 등을 종합해 2015년 예미산을 최종 부지로 결정했다. 정선군·한덕철광산업과 협력체계를 마련하고 2017년 공사에 들어갔다.

국가의 과학기술과 광산의 기반시설이 만났다. 광물을 캐던 갱도는 5년여의 공사 끝에 우주의 비밀을 찾는 길로 바뀌었다.

 

암반 1,000m가 만든 우주의 침묵

예미랩의 주요 실험실은 지표면에서 약 1,000m 두께의 암반 아래에 있다. 가장 깊은 아모레 실험실 바닥은 약 1,029m에 이른다. ‘예미산 정상에서 1,000m 아래보다 지표면에서 약 1,000m 두께의 암반 아래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전용 실험면적은 약 3,000이며 17개의 독립된 실험공간을 갖췄다. 가장 큰 공간에는 지름과 깊이가 각각 20m인 원통형 구덩이가 조성돼 있다. 수천t급 대형 검출기를 설치하기 위한 공간이다.

과학자들이 희귀입자를 찾아 깊은 땅속으로 내려가는 이유는 지상에 소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입자가 대기와 부딪히면 뮤온(muon)과 중성자 같은 수많은 입자가 지상으로 쏟아진다. 암석과 건축자재에서도 미세한 방사선이 나온다. 이들이 검출기에 닿으면 암흑물질이나 중성미자가 남긴 것과 비슷한 신호를 만들어 진짜 흔적을 가린다.

예미산의 암반은 이 잡음을 걸러내는 거대한 자연 방패다. 차단 능력은 물을 약 2,500m 높이로 쌓은 것과 맞먹는다. 지하에 도달하는 뮤온의 양도 해수면의 약 100만분의 3 수준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됐다.

희귀입자 연구에서는 검출기를 크게 만드는 것만큼 주변을 깊고 조용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예미랩은 지상의 소음을 암반으로 지우고 우주가 남긴 가장 희미한 속삭임을 듣는 공간이다.

 

중성미자의 정체와 암흑물질을 좇다

아모레-는 중성미자가 과연 어떤 입자인지를 밝히는 실험이다.

일반적인 원자핵 붕괴에서는 전자와 중성미자가 함께 나온다. 그러나 중성미자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반입자라면 중성미자는 사라지고 전자만 나오는 특별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아모레-는 몰리브덴-100이 들어간 초저온 결정 검출기로 이 극히 드문 현상을 찾는다. 관측에 성공하면 중성미자의 정체는 물론, 우주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이 남은 이유를 밝히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코사인은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을 찾는 실험이다. 암흑물질은 빛을 내지도 흡수하지도 않지만 우주 질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고순도 요오드화나트륨 결정에 암흑물질이 부딪힐 때 나타날 수 있는 아주 작은 빛과 에너지 변화를 측정한다. 특히 암흑물질 신호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을 검증한다. 이탈리아 그란사소 지하연구소가 보고한 계절변화가 실제 암흑물질의 흔적인지 가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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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지하 1000m에 위치한 고심도 지하실험시설예미랩’.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지하실험실'예미랩'은 예미산에 이미 뚫려 있는 한덕철광 광산갱도를 활용했다. 정선군 제공>

 

별이 만든 원소를 찾는 연아케이

예미랩에는 별 내부의 핵융합과 원소 생성 과정을 연구할 지하가속기 연아케이를 구축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연아케이가 별의 탄생 비밀을 연구한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엄밀히는 다르다. 연아케이가 연구하려는 것은 별이 태어난 뒤 어떤 원소를 만들고 어떻게 진화하는가 하는 문제다.

별의 중심에서는 수소가 합쳐져 헬륨이 된다. 별이 늙으면 헬륨이 다시 융합해 탄소와 산소를 만든다. 무거운 별과 초신성 폭발에서는 철보다 무거운 원소도 만들어진다.

우리 몸의 탄소와 산소, 뼈의 칼슘과 피 속의 철도 오래전 별의 내부와 폭발 속에서 태어났다. 별의 핵반응을 연구하는 일은 결국 지구와 생명을 이룬 물질의 고향을 찾는 일이다.

연아케이는 양성자나 알파입자를 빠르게 가속해 다른 원자핵에 충돌시킨다. 이때 일어나는 반응을 측정해 별이 어떤 원소를 얼마나 만드는지 계산한다.

다만 연아케이는 아직 예산과 설치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장비설계와 안전성 검토, 방사선 차단대책, 정부 심의 등을 거쳐야 한다.

지구를 관통하는 유령입자뉴아이

또 하나의 차세대 계획은 약 2t 규모의 중성미자 검출기 뉴아이다. 이름에는 예미랩 중성미자 실험과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new eye)’이라는 뜻이 담겼다.

중성미자는 전기를 띠지 않고 질량이 극도로 작은 입자다. 태양의 핵융합과 초신성 폭발, 원자로의 핵분열, 지구 내부 방사성물질의 붕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아 막대한 수의 중성미자가 매 순간 사람의 몸과 지구를 통과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우주 깊은 곳의 정보를 품고 날아오지만 좀처럼 붙잡히지 않아 유령입자라고 불린다.

뉴아이는 에너지를 받으면 빛을 내는 고순도 액체섬광체(liquid scintillator)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상됐다. 중성미자가 이 액체 속 입자와 충돌할 때 생기는 순간의 빛을 포착해 위치와 시간, 에너지를 알아낸다.

국제 연구진은 20261월 뉴아이의 기본구상 보고서를 공개했다. 태양과 원자로, 초신성 폭발, 지구 내부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계획이 담겼다.

그러나 뉴아이도 정부 신규 연구개발사업으로 제안된 단계다. 연구진이 사업의 필요성을 제출했다는 뜻이지 건설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평가와 사업 선정, 예산 배정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광산의 깊이가 우주의 깊이로

정선의 지하는 오랫동안 철과 석탄을 캐던 산업의 공간이었다. 이제 예미랩에서는 눈에 보이는 광물 대신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별의 핵반응처럼 보이지 않는 우주의 흔적을 찾는다.

연아케이와 뉴아이가 현실화하면 예미랩의 연구 영역은 암흑물질에서 별의 진화와 원소의 기원, 태양과 초신성이 보내오는 중성미자까지 넓어진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과 오랜 기술개발, 정밀한 안전설계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두 장비를 예미랩에 들어설 시설로 단정하기보다 구축을 추진하거나 검토하는 차세대 연구계획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예미랩은 이미 국내에서 가장 깊고 넓은 지하 기초과학 연구시설로 기반을 갖췄다. 예미산의 1,000m 암반이 지상의 소음을 지우는 동안, 그 아래 과학자들은 우주가 남긴 가장 작고 희미한 흔적을 기다린다.

별빛 한 줄기 닿지 않는 곳에서 별을 이룬 원소의 기원을 찾고, 아무 흔적 없이 지구를 통과하는 입자를 붙잡는다.

광물을 캐던 정선의 지하가 이제 우주의 비밀을 캐고 있다. 김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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