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읍 상동
정선읍 오리장
상동
강의 상류 쪽에 위치한 윗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부터 상동나루터 아래에서 향교 앞 현재 정선 제2교 위쪽으로는 재래장터가 있었는데, 1936년 대홍수에 모두 유실되어 당시 면사무소 앞 중동지역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정선선 철도가 개통되고 물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정기시장의 개설이 불가피해졌고, 엽연초 창고를 철한 뒤 그 자리에 공설시장을 개설하게 되었다. 1972년 정선 제2교가 놓이기 전까지 녹도와 연결하는 나루터는 성황당이 있는 곳 옆에 있었다.
상동에 있는 정선향교(旌善鄕校)는 1110년(예종 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정선면(旌善面) 덕송리(德松里) 내반점(內半點) 삼봉산(三峰山) 아래에 창건 되었다.1605년(선조 38) 7월 대홍수로 유실되었으나 다행이도 향유(鄕儒) 정유설(鄭有設), 최흥립(崔興立), 유대방(劉大邦) 등이 생사를 무릅쓰고 향교의 위패를 석교양구(石橋陽邱)의 안전한 곳에 초가를 세워 모시다가 1611년(광해군 3)에 다시 녹도(祿島) 삼봉산(三峯山) 아래로 이전했다. 그 후 1661년(현종 2)에 정선읍의 옛 향교 터를 옮겼으며, 1682년(숙종 8)에 군수 한명원(韓明遠)이 중건하였고 1732년(영조 8)에 군수 신치근(申致謹)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대성전·동무(東?)·서무(西?)·명륜당 및 부속건물을 완성시켰다. 1768년에 전사고(奠祀庫)와 흥학당(興學堂)을 신축하고 그 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역대 군수와 유림(儒林)의 손으로 향교를 중수하였다.
그러나 정선향교의 이전 기록은 문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1530년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군의 동쪽 8리에 있다. 지금은 옮겨서 군의 동쪽 1리에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현재 위치로 옮겨진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선향교는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됐다. 정선향교가 소장하고 있는 전적은 판본 20종 141책, 사본3종 6책 등 총 23종 147책이며, 이 가운데 《유선생안(儒先生案)》, 《향교교생안(鄕校校生案)》, 《향선생안(鄕先生案)》 등은 정선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담당하고 있다.
오리장
하동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정선읍 소재지에서 오리가 되는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 ‘오리정(五里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횡묵(吳宖?) 정선군수의 집무 일기인 《정선총쇄록(旌善叢?錄)》에는 ‘五里亭’이라고 나와 있다. 오리정 조양강변에는 수천평의 자갈밭인 ‘오리정광장’이 있는데, 의상대 절벽과 왕바우서리 절경과 어우러진 이곳은 오래 전 초중고등학생들의 소풍지이기도 했다.
-다음호에 계속-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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