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소득 선정 후 10개월 1,878명 증가…전입자 91.6% 외부 유입
강원연구원 분석, 지급액 44억 중 26억 지역서 소비…2년간 경제효과 1,750억 기대

1978년 13만9,862명에 이르던 정선군 인구는 지난해 9월 3만3,266명까지 내려앉았다.
탄광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일자리가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등졌다. 그렇게 47년, 정선의 인구시계는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를 새기며 오직 감소의 방향으로만 흘렀다.
그 길고 가파른 하강 곡선에 마침내 반전의 신호가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정선군 인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10개월 연속 증가했다. 올해 7월 말 인구는 3만5,144명으로 지난해 9월 말보다 1,878명, 5.6% 늘었다. 47년 동안 사람을 떠나보내던 정선에 다시 이삿짐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지난해 10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 선정과 맞물려 나타났다. 기본소득이 인구 증가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범지역 선정이라는 정책 신호가 전입을 자극하고 지역화폐로 지급된 소득이 소비와 창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원연구원 강종원·전지성·김종화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정책 이슈 보고서 ‘정책톡톡’을 통해 정선군 농어촌기본소득의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분석하고, 이를 강원 전역으로 확산하기 위한 ‘강원형 자원배당’ 모델을 제안했다.

촘촘한 사용망 주민 지갑에서 지역 매출로 연결
농어촌 기본소득의 효과는 주민의 지갑과 골목상권에서 먼저 나타났다.
‘정책톡톡’에 따르면 지난 3월 13일 기준 정선군 지급 대상자 2만9,740명에게 약 44억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이 가운데 60%인 약 26억원이 지역 음식점과 전통시장,소매점,생활서비스업 등에서 소비됐다.
지급된 돈을 지역 안에 머물게 한 기반은 지역화폐‘와와페이’다. 전체 사업체 2,876곳 가운데 2,656곳이 가맹점으로,가맹률은 92.4%에 이른다. 주민의 생활비로 지급된 돈이 지역 상인의 매출로 되돌아갈 수 있는 촘촘한 사용망을 갖춘 셈이다.
소비를 새로운 생업으로 잇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면 지역 창업 지원사업을 통해 북평면 2곳, 화암면 3곳,남면 1곳,여량면 3곳 등 9개 사업장이 선정됐다. 음식점과 의류 판매, 생활서비스, 장류·발효식품, 밀키트처럼 주민 생활과 지역 자원을 결합한 업종이 중심이다.
지역 농협 4곳은 매출액의 1%를 사회적 기부금으로 조성하고,면 지역 하나로마트를 기본소득 사용처로 운영한다.공공배달앱‘먹깨비’는 기본소득 결제액의 5%를 돌려주고 지역 축제장에는 와와페이 전용 특판장이 마련된다.
기본소득이 주민의 생활비를 넘어 골목상권의 매출과 새로운 생업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연구원은 기본소득과 연계 정책이 정선에서 연간 875억원의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와 700명 규모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2년간 기대 효과는 생산·부가가치 1,750억원,일자리 1,300여 명으로 추산했다.

영월과 인구 격차 5,000명에서 500명으로
정선의 인구 증가세는 시범사업 선정 직후 가장 가팔랐다.
지난해 10월 343명, 11월 848명, 12월 422명이 증가했다. 전체 증가 인원 1,878명의 85.9%인 1,613명이 석 달 사이에 집중됐다. 올해 들어 증가 폭은 월15∼103명으로 완만해졌지만 7월까지 한 달도 감소하지 않으며 장기 하락 흐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때 5,000여 명에 달했던 영월군과의 인구 격차도 500여 명 수준으로 좁혀졌다. 같은 기간 태백시는 56명,삼척시는 155명,영월군은 29명 감소해 폐광지역 가운데 정선의 반등이 더욱 두드러졌다.
‘정책톡톡’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정선군 전입자는 2,266명,전출자는 597명으로 순전입 인구는1,669명이었다.
타 시·도에서 온 전입자는1,051명으로, 이 가운데 수도권이 692명, 65.8%를 차지했다. 경기도 373명,서울 249명,인천 70명 순이다. 도내 다른 시·군에서 들어온 1,024명을 합하면 정선 밖에서 유입된 인구는 2,075명이다.전체 전입자의 91.6%,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외부에서 정선을 새로운 거주지로 선택한 셈이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525명, 50대 524명으로 50대 이상이 전체 전입자의 46.3%를 차지했다.주요 경제활동 연령층인30대 228명과 40대 356명도 정선으로 들어왔다. 은퇴 전후 세대의 이동이 두드러진 가운데 취업과 창업,가족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30∼40대의 유입도 적지 않았다.
연구진은 기본소득 지급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전입이 이어진 점에 주목했다. 실제 지급액뿐 아니라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는 정책 신호가 거주지 선택과 정착 의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고한 인구 12.4%증가…모든 읍·면 상승
지역별로는 고한읍의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다.고한읍 인구는 지난해 9월4,196명에서 올해 7월4,718명으로 522명, 12.4%증가했다.
정선읍은 9,808명에서 1만293명으로 485명 늘며 1만 명 선을 회복했고, 사북읍은 4,138명에서4 ,393명으로 255명 증가했다.이들 3개 읍에서 늘어난 인구는 1,262명으로 군 전체 증가분의 67.2%를 차지했다.
남면은 151명, 북평면은 121명, 임계면은 102명 늘었다. 신동읍과 함백출장소,화암·여량면에서도 인구가 증가해 조사 기간 모든 읍·면과 출장소가 상승세를 보였다.
세대 수는 지난해 9월 1만9,129세대에서 올해 7월 2만471세대로 1,342세대 증가했다. 반면 세대당 인구는1.74명에서 1.72명으로 낮아져 1인 가구와 소규모 가구의 전입 비중이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성별로는 남성이 1,126명, 여성이 752명 늘어 전체 증가 인원의 약 60%가 남성이었다. 늘어난 인구를 가족 단위 전입과 균형 잡힌 인구구조로 발전시키는 일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정선에서 시작된 기본소득, ‘강원형 자원배당’으로
강원연구원은 정선의 농어촌기본소득을 한 지역의 실험에 머물게 하지 않고,지역 자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주민과 나누는‘강원형 자원배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선은 강원랜드 배당금, 지역재원 창출형 기본소득 지역으로 추가 선정된 화천은 산천어축제와 태양광발전 수익을 재원으로 활용한다. 지역마다 가진 자원과 산업구조가 다른 만큼 하나의 방식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지역 여건에 맞는 배당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시·군별 자연자원과 공공자산,개발이익 등 이른바‘공유부’를 체계적으로 목록화하고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폐광지역개발기금과 재생에너지 수익,향후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도 주민 배당과 연계할 수 있다고 봤다.
가칭‘강원특별자치도 농산어촌기본소득위원회’를 구성하고 안정적인 지역재원을 확보한 시·군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 장기적으로 도 전역에 적용할 수 있는 제도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이다.
연구진은“정선이 연 길을 넓혀간다면 농산어촌기본소득은 한시적인 시범사업을 넘어 강원형 제도로 자리 잡고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입에서 정착까지…촘촘한 정선형 기본사회 구축”
정선군은 기본소득의 효과를 장기 정착으로 이어가기 위해 교통과 의료,돌봄 정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버스 완전공영제를 통해 운행 노선을 57개에서 75개로 확대하고 와와버스를 무료화한 이후 이용객은 76%증가했다. 군립병원은 직영 전환과 진료 기능 확충 이후 이용객이 72.9%늘었다. 만70세 이상 주민에게 지급하는 실버 헤어컷 바우처도 연간 12만원에서 18만원으로 확대됐다.
군은 통합돌봄 바우처와 마을공동체 사업, 귀농·귀촌 및 청년 정착 지원도5개 면으로 넓힐 계획이다. 소득과 교통, 의료·돌봄·창업을 하나의 생활망으로 묶어 전입의 계기를 정착의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었다고 정착까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전체 증가 인원의 85.9%가 집중된 이후 올해 들어 증가 폭이 둔화했고, 전입자의 절반 가까이가 50대 이상인 데다 1인 가구와 남성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전입 주민이 실제 정선에서 생활하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지, 가족이 함께 옮겨와 아이를 키우는지,늘어난 소비가 안정적인 창업과 고용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속해서 확인해야 한다.주거와 일자리, 교육·의료·교통·돌봄을 연결한 정착 정책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최승준 정선군수는 “농어촌기본소득은 단순히 인구를 늘리기 위한 지원책이 아니라 농촌에서도 안정된 소득을 바탕으로 존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국가적 실험”이라며 “기본소득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서 소비되고 다시 주민의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입 주민이 잠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정선에서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주거·일자리·교육·의료·돌봄을 아우르는 정선형 기본사회를 촘촘하게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1978년 이후 정선의 인구통계는 오랫동안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를 기록해 왔다.농어촌기본소득은47년간 이어진 하강 곡선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고,메말랐던 지역경제의 혈관에 다시 돈이 흐를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늘어난 주소만으로 소멸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기본소득이 전입의 문을 열었다면 일자리와 주거,교육·의료·돌봄은 돌아온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정선의 진짜 반등은 사람이 돌아온 오늘이 아니라, 돌아온 사람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떠나지 않는 내일에 완성된다. 김광희 기자kwh63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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