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소득·무료버스·생활복지가 만든 정주의 힘… 65세 이상 은퇴세대 귀촌·귀향 이어져
한때 정선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이 더 익숙한 곳이었다.
탄광의 불이 꺼진 뒤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했고, 빈집 처마 밑에는 먼지만 쌓였다. 시장 골목의 간판은 하나둘 빛을 잃었고, 산 아래 마을에는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체념 같은 말이 오래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선에는 새로운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 변화는 시장 골목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평생 직장생활을 마친 사람들이 산골 마을로 내려온다. 비어 있던 집에는 불이 켜지고, 마당에는 고추와 상추가 자란다. 새벽이면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고, 장날이면 시장 골목에서는 낯선 얼굴들이 어느새 단골이 되고 이웃이 된다.
■ 인구 반등의 중심에는 은퇴세대가 있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기준 정선군 주민등록 인구는 3만512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2명(5.34%) 늘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9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모두 1862명이 순증했다. 사업 발표 직후인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1613명이 늘며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다.
읍·면별로는 강원랜드 직원 기숙사가 있는 고한읍이 512명으로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고, 정선읍(485명), 사북읍(243명)이 뒤를 이었다.

<정선군에 은퇴세대의 이주가 늘고 있다. 이들은 기본소득과 생활밀착형 다양한 복지정책 및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환경이 정선 이주의 첫번째 요인으로 꼽고 있다. 사진은 여량면 아우라지 풍경.>
그러나 정선의 변화는 전체 인구보다 은퇴세대 증가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다.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6월1만1457명에서 올해 6월1만2956명으로 2년 새1499명(13.08%)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922명(7.66%)이나 증가했다.
전국적인 고령화 추세 속에서도 정선의 노령인구 증가 폭은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정선보다 인구가 많은 태백시는 890명(7.72%), 영월군은 1075명(8.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서울에서3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던 김모(68)씨 부부도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여량면을 오가며 텃밭을 가꿨지만 어느새 서울보다 정선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결국 서울 집을 정리한 뒤 주소도 정선으로 옮겼다.
김 씨는 “와와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기본소득까지 지급되니 생활비 부담이 줄었다” 며 “시장에 가면 금세 얼굴을 익히게 되고, 도시에서는 잊고 살던 시간을 다시 찾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침에 창문을 열면 산이 먼저 보이고 밤에는 별이 보인다” 며 “은퇴 후 처음으로 마음이 천천히 살아나는 기분”이라고 웃었다.
■ 복지가 생활을 바꾸고, 소비가 골목을 살렸다
이 같은 흐름을 우연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선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월 15만원 지급을 비롯해 군내버스 무료 운영, 공공의료 및 순회진료 강화, 경로당 무상급식 확대, 어르신 목욕·이미용비 지원 등 생활밀착형 복지정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기본소득 시행 이후 지역화폐 가맹점은 167곳(8.7%) 늘었다. 약국과 미용실, 의류점, 베이커리 등 신규 창업(업종 변경 포함)도 이어져 지난 6월 25일 기준 새로 문을 연 점포는 112곳으로 집계됐다.
지역경제를 보여주는 지표도 좋아졌다. 경제활동인구는 2만244명으로 지난해보다 992명(5.15%) 증가했다.
지역 곳곳에서도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남면에는 약국과 치킨집이 새로 들어섰고, 여량면에서는 8년간 문을 닫았던 노래연습장이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북평면에서는 창업지원사업 1호점이 문을 열었으며, 고한구공탄시장에서는 1인 가구를 위한 반찬 나눔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정선군이 농어촌 기본소득과 생활복지 확대로 은퇴세대 정착지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 6월 1만1457명에서 올해 6월 1만2956명으로 2년 새 1499명(13.08%)이나 늘었다. 사진은 지난 3일 사북읍민의 날 한마당 축제.>
■ “지방소멸을 넘어 새로운 지역 모델로”
전문가들은 이제 정선을 ‘은퇴자 친화도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착한 은퇴세대는 지역사회 안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정선군 시니어클럽 시니어기자단 9명 가운데 4명은 서울과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전입 주민이다.
이들은 마을 곳곳을 취재해 주민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를 정선신문에 게재하며 단순한 귀촌인을 넘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권용찬 삼척상공회의소 정선지소장은 “정선군이 기본소득과 다양한 생활복지가,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면서 지방소멸 시대의 새로운 지역 모델이 되고 있다” 며 “앞으로는 의료와 돌봄, 휴양, 웰니스를 연계한 실버산업을 육성해 은퇴자들이 지역에서 소비하고 활동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녁이 내려앉으면 시장 골목에는 하나둘 불이 켜지고, 오래 비어 있던 집 창문에도 다시 불빛이 번진다. 골목에서는 이웃의 인사가 저녁 공기 속으로 스며들고, 마당에는 토마토와 고추가 붉게 익어간다.
한때 사람을 떠나보내던 정선은 이제 누군가의 인생 2막을 품는 마을이 되었다. 지방소멸이 당연한 미래처럼 여겨지는 시대. 정선은 거창한 구호 대신 저녁마다 늘어나는 불빛으로 하루를 채운다. 오래 비어 있던 집에 다시 불이 켜지고, 그 불빛은 산골의 밤뿐 아니라 사람들의 내일까지 조금씩 밝혀 나간다. 김광희 기자 kwh63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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