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렬 옹 아내 떠난 뒤 시작한 배움의 길 “긍정적으로 살고, 걱정은 오래 품지 않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오래전 누군가 남긴 이 말은 희망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비유로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 정선의 작은 교실 한편에서는 그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는 한 노인이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정선읍 애산리 여성회관 영어회화 교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복도에는 한 사람의 발걸음이 먼저 도착해 있다. 정선읍 거주 이상렬(91 사진) 옹이다.
희끗한 머리칼 아래로 깊게 패인 주름은 긴 세월을 말해주지만, 영어책을 펼치는 그의 눈빛만은 젊은 학생처럼 반짝인다. 그는 4년째 단 한 번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서툰 발음으로 영어 문장을 따라 읽고, 공책 위에 단어를 적으며 새로운 언어를 익혀가고 있다.
수업을 맡고 있는 황금희 강사는 말한다.
“이상렬 어르신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세요. 연세는 가장 많지만 배움에 대한 자세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이 옹은 지난 2000년, 오랫동안 이어온 사업을 정리한 뒤 도시를 떠나 정선에 삶의 터를 잡았다. 수많은 도시 가운데 그가 정선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정선이라는 이름은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산과 계곡도 참 아름답고요.”
그렇게 자연 속에서 평온한 노년을 보내던 그의 삶은 2022년 큰 슬픔을 지나게 된다. 평생 곁을 지켜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집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함께 밥을 먹던 자리도, 무심히 오가던 짧은 대화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긴 세월을 함께한 사람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 앞에서 삶의 속도를 멈춘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는 대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영어공부였다.
처음에는 허전한 시간을 견디기 위한 작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도전은 어느새 삶을 다시 움직이는 힘이 됐다. 그는 오늘도 영어책을 가방에 넣고 교실로 향한다.
이 옹은 건강하게 나이 드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지 말고, 걱정도 오래 품으면 안 돼요. 빨리 털어내야 합니다.”
그라운드골프도 즐기며 꾸준히 움직인다. 마음과 몸을 함께 늙지 않게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다.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지금, 많은 노인들은 질병과 외로움 속에서 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러나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이상렬 옹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깊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과연 몇 살까지 꿈꿀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무언가를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배움은 젊은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끝까지 빛나게 만드는 힘이다.
정선의 작은 교실에서 영어책을 펼치는 이 옹의 하루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오늘도 그는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자신의 마음속에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 나무는 희망이다.
배움이다.
그리고 끝까지 삶을 사랑하려는 한 인간의 조용하고도 단단한 의지다.
그 푸른 나무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사과나무를 심고 있습니까?”
임학빈 기자 yedo55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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