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인에서 치유전문가로… 향기와 글로 전하는 김민서 씨의 회복의 이야기
서울의 병원과 학교에서 오래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아온 한 여자가 있다.
수많은 불빛과 사람들 사이를 지나온 그녀는 이제 정선 북평면 나전리의 조용한 산골에 머물며 커피를 내리고 향을 만든다. 바쁘게 흘러가던 삶의 끝에서, 사람의 몸보다 먼저 지쳐가는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김민서 씨는 아로마테라피 강의를 맡고 있으며, 남편 홍윤성 씨는 ‘임계커피 로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의료인과 교육자,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서로 다른 삶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현재 남편과 함께 정선에 정착해 두 딸을 키우며, 산골 마을의 느린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차분히 이어가고 있다.
김 씨와 정선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 고향은 정선군 화암면 호촌리였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수원에서 성장했지만, 방학이 되면 그는 늘 화암의 산과 숲으로 돌아오곤 했다. 계곡물 소리와 흙냄새, 해 질 무렵 산등성이 위로 번지던 바람 냄새는 어린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시골 풍경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마음 한구석에서 천천히 자라났다. 도시의 삶이 길어질수록, 사람과 불빛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정선의 산과 바람은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어릴 때는 몰랐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선이라는 곳이 제 마음속 고향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은 자연 곁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학 석사를 취득했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이후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경기도 지역 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의 건강과 삶을 돌보는 일에도 힘써왔다.
지금은 아로마테라피 전문가이자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건강과 치유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글을 쓰며, 국제 아로마테라피 전문가 단체인 AIA(Alliance of International Aromatherapists) 회원으로 국내외 연구와 교육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을 가장 깊게 바꾸어 놓은 것은 가족이었다.
몇 해 전, 건강이 악화된 친동생을 위해 자신의 신장 일부를 기증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동생은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후유증과 체력 저하로 쉽지 않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평범한 일상을 버텨내는 일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몸을 회복했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그에게 ‘치유’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말한다.
“치료와 치유는 다릅니다.”
치료(Treatment)가 질병과 증상을 의학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이라면, 치유(Healing)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가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아로마테라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로마테라피의 핵심은 식물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Essential Oil)이다. 꽃과 잎, 줄기와 뿌리, 열매에서 얻어지는 고농축 천연 향기 성분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친 일상 속에 작은 휴식을 만들어 준다.
그는 향이 단순히 좋은 냄새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몸만 지치는 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무너집니다. 결국 회복도 몸과 마음이 같이 이루어져야 오래 갑니다.”
김 씨의 꿈은 분명하다.
현재 운영 중인 공간을 더 확장해 정선을 중심으로 아로마테라피 교육과 연구를 활성화하고, 전문 강사와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역할까지 해내는 것이다. 또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자격증 취득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돕고, 아로마테라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정선의 자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정선은 자연 자체가 사람을 쉬게 만드는 힘이 있는 곳입니다. 앞으로 아로마테라피 교육과 연구를 통해 지역사회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창밖으로 산바람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서 그는 오늘도 몸보다 먼저 지쳐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전하는 향기는 단순한 향기가 아니다.
가족을 향한 사랑과 나눔, 아픔을 견디며 다시 삶의 균형을 되찾아간 시간, 그리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싶다는 마음이 그 안에 함께 스며 있다.
그녀는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질문》, 《스트레스가 독이 되지 않게》, 《여신의 향기》, 《디톡스 착각》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현대인들의 불안과 스트레스, 지쳐가는 몸과 마음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연 속 치유와 삶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김민서 씨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대인들은 몸의 병보다 마음의 피로를 더 오래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정선의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기 자신을 쉬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전하고 싶습니다.”
산바람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커피 향과 은은한 아로마 향기 사이에서, 그녀는 오늘도 누군가의 지친 마음이 조금 덜 아프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었다. 임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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