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동
-정선역
-오반리
구미동
어천 북쪽, 정선역 뒤쪽에 있는 마을이다. 일설에는 마을 지형이 거북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구미동(龜尾洞)’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가 일제강점기에 구미동(九尾洞)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녹도와 옆으로 물줄기가 감싸돌 듯 휘돌면서 물가 한쪽으로 굼이 진 곳에 위치한다고 해서 ‘구미’라고 했다.
하천의 후미진 곳을 지칭하는 ‘구미’는 ‘구미동’으로 변해, 이를 한자화하면서 본래의 어원인 ‘굼’과는 관계없는 ‘龜尾洞’, ‘九尾洞’으로 쓰기 시작했다.
구미동에는 백양목이 앞으로는 길게 들어서 있었으나 1954년 갑오년 수해때 대부분 유실되었다. 그리고 마을도 현재의 위치보다 훨씬 북쪽인 개끝쪽으로 치우쳐 강변 일대에 있었으나 1967년 1월 20일 증산~정선간의 정선선 24km 구간 개통 이후 나전역까지의 철도를 산자락 하래에 개설하는 공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현재의 정선역 뒤쪽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종종 구미동 지명을 개끝과 동일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구미동에는 40년 전 22가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1가호가 살고 있다.
정선역
구미동 앞에 있는 역이다. 1967년 1월 20일 정선역이라는 이름의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증산역과 정선역 사이의 철도는 1962년 5월 예미~정선간 정선선 공사를 착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총공사비 14억 3000만원을 들여 4년 7개월 만인 1966년 초 예미~고한간 30km 구간을 개통했으며, 증산~정선간 24km 구간은 이듬해 완공되어 1967년 1월 20일 오후 2시 30분 정선역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우리나라 철도사상 최대의 난공사였던 증산~정선간 정선선 개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안경모 교통부장관, 철도청장 등이 참석해 정선지역 탄전 개발과 무연탄 수송에 기여할 정선선 개통을 축하했다. 1960~1970년대 석탄 호황기 때 산업선으로 호황을 누린 정선역은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인근 탄광이 문을 닫자, 무연탄 운송량은 물론 화물 운송과 수송인원이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 3월 17일부터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가는 정선5일장 관광열차가 첫 운행을 시작하면서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정선5일장 관광 거점 역으로 변모했다. 현재 코레일 충북본부 민둥산관리역 소속인 정선역은 하루 2차례 상행과 하행 열차가 운행되며 여객, 승차권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역사 내부에는 정선군의 역사와 지명, 주변의 관광지 등을 담은 홍보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오반리
구미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중심에는 정선 서장이 오리 길이고, 마을 끝까지도 오리 길이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오반리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들어오지 않아 읍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한 곳이다. 40년 전에는 75가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20가호 정도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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