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살아 있는 기억/ 역전 강원여인숙
2020/04/07 14:3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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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역앞 강원여인숙과 물산 그리고 상회


기차역의 앞 광장. 휴대폰 없던 시절, 사람들은 처음 가는 지역을 가서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날 때 역전에서 만날 약속들을 주로 하곤 했다. 물론 지금도 역에서의 만남은 다반사일 듯 싶다.


정선역은 지어진지 54년 지났다. 1967년 1월 영업을 개시했으니 중년의 나이가 훌쩍 넘은 나이다. 그 정선 역 광장 한 켠에서 40여년을 오롯이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맞이한 강원 여인숙이 자리했다. 그 강원 여인숙 왼쪽으로 강원상회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강원물산이 있다. 그 세 곳의 주인은 한 사람이다.


“한창 탄광이 있고 정선 읍내가 바삐 돌아갈 무렵에는 역전이 사람들이 엄청 드나들었지...그때는 돈이 벌리는 게 참 쉬운 일이었어”
역전의 강원상회에서 자리를 지키던 윤 수봉 (80세)씨는 연신 담배를 사러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탄광이 성업중이던 호시절을 그리워한다.


횡성에서 태어난 윤씨는 40년 전 서울 경동시장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다 정선으로 수금하러 올 일이 있어 내려왔다가 정선이 좋아 아예 정선역 앞에 자리를 잡았다.


“사업은 안 되서 어렵던 시절이었어... 그때 가진 돈 다 털어 먹고 정선에 내려 와 여관 생활을 3년을 하며 지내야 했어, 그때 친절하던 정선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나서 자식들 키우며 잘 먹고 살았지”부인 선 정진(80세)씨는 가난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요즈음은 의학이 발전해 한약재 의존이 낮아지는 바람에 약재 판매도 저조해졌지만 한창때는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에 전속 납품업자로 지정 받아 정선 약재들을 서울로 수도 없이 올려 보냈다.


“우리는 정선지역 산에서 채취해 오는 약초들을 모아 말리고 다듬고 다시 약재로 만들어 서울로 올려 보내는 일들을 하느라 밤낮없이 일만 해야 했었지...”


강원물산이 성업을 해서 돈이 벌리다 보니 25년 전에 중앙여인숙을 인수해 강원여인숙으로 상호를 바꾸고 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는 허름하지만 싸고 경제적인 숙소로 이주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미 태풍이 왔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헬리콥터 타고 봉양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다녀갔지, 40년 동안 세 번의 물난리를 겪으며 참 많이 힘든 고비를 넘기며 지킨 터전인데 떠나려니 억장이 무너져~”


이제 도로가 나면 건물들이 헐리는데 부부는 다시 고향인 횡성으로 돌아가려고 생각중이다.


“젊은 청춘에 와서 벌써 40년이 지났지, 떠나고 싶지 않아 여기서 그래도 제2의 고향이라 여기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며 지냈는데 친구들을 두고 가려니 서글퍼...”

[ 권혜경 hk@jsweek.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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